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길남 사건 (문단 편집) === 시간순 === * [[1992년]] [[5월 22일]]에 오길남이 귀국했다. [[1993년]]에 발표한 수필을 비롯하여 줄곧 '[[윤이상]]과 송두율이 자기 가족에 대한 월북과 자신에 대한 재월북 회유를 주도했다'며 두 사람을 강하게 비난했다. [[https://www.rfa.org/korean/weekly_program/ae40c528c77cac00c758-c228aca8c9c4-c9c4c2e4/co-su-10082019134802.html|기사{{{-2 (자유아시아방송)}}}]] * [[1992년]] [[6월]] 전후로 [[윤이상]]은 서독의 한인회보와 시사저널에 보낸 해명서 등을 통해서 '오길남의 주장과 다르게 자신은 오길남에 대한 월북 회유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둘러싼 논란은 [[대한민국 정부]]의 정치 공작'이라고 주장했다. [[http://www.gooddaynews.co.kr/print_paper.php?number=4924|굿데이뉴스]] [[https://www.sisajournal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08239|시사저널]] * [[2003년]] [[10월 7일]]에 송두율의 [[국가보안법]]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[[서울중앙지방검찰청]]은 오길남을 소환하여 그의 친북행적에 대해서 조사했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22/0000008895|기사{{{-2 (세계일보)}}}]] [[2008년]] [[7월 24일]]에 송두율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는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79/0001980285|기사{{{-2 (노컷뉴스)}}}]] 그리고 다음날 유죄로 확정됐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214/0000077013|기사{{{-2 (MBC)}}}]] * [[2011년]] [[10월]]에 [[경상남도]] [[통영시]]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'신숙자와 두 딸의 송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'이 벌어졌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3/0004150945|기사{{{-2 (뉴시스)}}}]]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가 통영국제음악제 등 윤이상 기념사업의 철폐를 요구했으나, 통영시 예술단체에서는 '월북 권유는 사실이 아니다'라는 입장을 세우며 반발했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1/0005354147?|기사{{{-2 (연합뉴스)}}}]]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3/0004028386|기사{{{-2 (뉴시스)}}}]] * [[2011년]] [[12월 10일]]에 윤이상 가족 측은 오길남의 주장을 적극 부인하고 그를 [[사자명예훼손죄|사자명예훼손]] 혐의로 형사 고소를 했다. [[https://www.christiantoday.co.kr/news/253299|기사{{{-2 (크리스천투데이)}}}]]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1/0005412783|기사#1{{{-2 (연합뉴스)}}}]]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01/0005495839|#2]]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20/0002304880|기사{{{-2 (동아일보)}}}]] 이후 [[2013년]]에 검찰은 오길남의 혐의에 대해서 '혐의없음([[증거불충분]])'을 이유로 [[불기소처분]]을 했다. [[https://n.news.naver.com/mnews/article/028/0002401842|기사{{{-2 (한겨레)}}}]] * [[2016년]]에 오길남은 [[연합뉴스]]와의 인터뷰에서 "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.", "윤 선생님은 당시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분이었고, 그 명망이 나의 허황한 믿음[* 여기서 '나의 허황된 믿음'이란 '북한에 대한 환상'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.]을 더 굳게 만든 것 같다"라는 정도로 답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1&aid=0008815595|기사{{{-2 (연합뉴스)}}}]] * [[2017년]]에 윤이상의 딸 윤정은 [[서울신문]]과의 인터뷰에서 "오씨 때문에 아버지 이름이 너무 많이 나빠졌다. ... (중략) ... 오씨가 주장한 게 사실인 것처럼 여겨져 너무 안타깝다. 아버지와 관련된 진실은 시간이 가면 꼭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."라고 답했다. [[https://www.seoul.co.kr/news/newsView.php?id=20170708010011|기사{{{-2 (서울신문)}}}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